유원(悠遠)한 세월의 흐름은 우리조상들의 약의 발전과 창조를 위한 무한한 노력이 파묻혀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천연물만을 그대로 약으로 썼던 옛날에 비하면 자연물에서 추출 분리된 많은 약효물질들은 오늘날 보다 효율적으로 인간의 병고(病苦)를 덜어줄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필연성(必然性)에서 그 어느 학문보다도 먼저 생약학(生藥學)은 이루어졌으며 모든 자연과학의 모체(母體)로서 많은 순정과학(純正科學)을 낳게 했고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세계를 이루게 된 것은 지나간 멀고 긴 역사(歷史)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자칫 일부 몰지각한 과학도들은 연구대상물로서 그리고 자원(資源)으로서의 귀중한 생약을 한낱 신농시대의 유물로서 그리고 한약 또는 본초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표징적(表徵的) 혹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연구물로 착각을 일으키는 수가 종종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생약은 합성화학(合成化學)의 주형(鑄型)으로써 많은 과학자들의 공(功)이 밑거름 되었고 지금도 도처에 즐비해있는 무궁무진하고 풍성한 천연자원(天然資源)의 신비가 우리들 생약학도들의 개척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국가(現代國家)의 저력(底力)이 과학과 경제에 따라 평가되고 있는 이즈음 우리는 다행히도 한국고유의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특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국가와 더불어 발전하는 학문이 성장하는 산업(産業)으로의 응용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는 현대(現代)에 우리는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조(高潮)되어가고 있는 한국학의 외침 속에서 이제 우리 동학(同學)들은 여기 한국생약학회(韓國生藥學會)를 창립(創立)합니다. 한국생약학회는 한국적 바탕 속에서 탄생하려고 하는 것이며 소박하고 거짓 없는 자연물을 대상으로 연구 단합하여 인류복지 사회에 공헌코자 함을 그 목적(目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가적(國家的)이고 시대적(時代的)요구에 대처한 학회로서 그 이념(理念)과 사명(使命)을 이룩하기 위하여 이에 우리는 몇 가지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여 제시하는 바입니다.
외향성이 아니고 독창성을 지닌 약학 이것이 한국적 약학의 특수성이며 한국학의 중요한 분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방과 허식을 배제하고 외국의 과학과 기술을 흡수 소화하여 이를 취사선택하고 한국적 생약학을 부각시키자는 것입니다.
생약학은 그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의 일체를 연구하여야하는 학문입니다. 응용과학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우리는 경제개발에 진통을 겪고 있는 현실적 사명감에서 생산과 직결되는 과제를 다루어 산학제휴(産學提携)하여 매진하여야겠습니다. 산업없는 학문은 쓸모 없는 것이며 학문없는 산업은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기업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생약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삼이 현금 2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관심과 연구가 절정에 이르고있는 이때에 우리는 외국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이를 공동과제로 삼아 유기적으로 이를 정리 연구하여 육성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재배 생산에 있어서도 보다 빠르고 강건하게 자랄 수 있는 방법도 아울러 모색하여야 하겠습니다.
생약학회로서 발족하는 이상 지금까지 주저했던 시판한약의 기초조사는 물론 한약의 성분 약리 또는 그 제제에 관한 기술 등에 관하여도 과학적인 연구가 하루속히 이루어져야함은 우리의 숙명적인 과제의 하나인 것입니다.
인간이 고립해서는 살수 없듯이 우리 학회의 발전도 혼자서만은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췌언(贅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약학의 많은 보조과목과의 관련성에서 우리는 타학회와의 유대는 물론 외국학회와 수시로 결합되고 긴밀하고도 신속한 정보교환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외국의 연구동향과 연구자료를 분석하고 이들의 장점을 본받아 정진함으로써 하루속히 국제적 수준까지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에 비약될 수는 없지만 무실역행함으로써 우리의 앞날은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우리의 당면한 문제는 또한 국가적인 여망(輿望)이기도 합니다. 세계 속에 놓여진 한국보다는 한국 속에서 세계를 찾을 수 있는 학회가 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외침이 장차 헛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생약을 애호하는 모든 동호가(同好家)들이 이제 개화기를 맞이하겠다고 생각할 때에 오늘의 벅찬 기쁨과 함께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그 언젠가는 충실하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가꾸고 쉼없는 노력을 하여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자원개발을 위하여 산야로 바다로 뛰어 달리던 그 활기와 그 넓고도 높은 기성이 오늘 이러한 모임을 쉽게 탄생케 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학회의 백년대계(百年大計)와 전통을 창조하기 위하여 자리를 같이 한 순수한 지성들은 말없이 일 함으로써 오직 박력(迫力)있고 주저하지 않는 기치(旗幟)를 높이 들 뿐입니다.
1969年 12月 27日